40년 만에 다시 찾은 청주 상당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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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상당(上黨)은 청주의 옛이름인 바, 청주는 일찍이 마한(馬韓)의 땅으로서 백제가 삼한을 통합한 후에 상당현이라 하였고 낭자곡이라고도 불렀다.
청주는 충청북도의 중서부에 위치하고 금강 상류에 형성된 청주분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소백산맥의 지맥인 상당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한 갈래의 산줄기에 청주의 진산(鎭山)인 우암산이 우뚝 솟아있고, 그 줄기는 당산에서 머물고 있다.
그리고 서쪽에는 고석산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능선이 있어 그 능선 사이에 미호천(美湖川)의 지류인 무심천이 북으로 흐르고 있는데, 이 무심천이야 말로 청주의 젖줄로서 청주시민의 안락한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무심천의 이름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대교천(大橋川)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알 수 없으나 무심천이란 이름으로 바뀌어졌는데 구전에 의하면, 과거를 보려던 어느 선비가 청주에 와서 정진원(情盡院)의 여인과 깊은 사랑에 빠졌다가 한양에 올라가 과거급제하고 돌아와 보니 그 사이 여인이 변심한 것을 보고 이를 한탄하여 읊은 시가 있는데, 그 시의 문구 속에 무심(無心)이란 말이 있어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청주(淸州)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맑은 고을'이란 뜻이다. 맑다는 것은 밝으로는 빛이요, 안으로는 깨끗함이다. 혼탁한 세파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소망은 한결같이 맑고 깨끗하며, 윤택한 삶을 구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
청정심시불(淸淨心是佛)이라는 말이 있으니, "맑고 깨끗한 마음이 곧 부처님의 마음이요, 부처님의 자리다"라는 뜻 일게다.
그런데 무심천의 오염도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생활폐수 등을 무분별하게 흘려보낸 탓도 있지만 청주시민 모두가 너무 '무심'했던 탓이리라.
특이한 것은 충청북도의 도청소재지인 청주에는 아직도 5일장이 선다. 5일장이라 하면 그 말만 들어도 향수에 젖게 되는데 이러한 양면성(兩面性)이 오히려 소박하게 여겨진다.
청주 근교의 진천<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의 그 진천>, 괴산, 증평, 신탄진 등 각지로부터 몰려들어 장을 이룬다.
장날이면 농민들은 고추, 마늘 등 특용작물과 아껴두었던 일반미도 내다 파는데, 5일장이 설 때는 상인들의 흥정 또한 볼만하다. 왁자지껄 집요한 삶의 현장을 연출하지만, 두 서 너 번 밀고 당기다 적당한 가격에서 수급의 균형점을 찾고 마는 것이 보통이다. 시장은 가장 적나라한 '생의 한가운데'라서 배울 것이 많아 나는 가끔 시장에 들르곤 했었다. 아내와 같이 일 때도 있었고, 혼자일 때도 더러는 있었다. 그런데 깡시장, 중앙시장 등 청주시내 주요시장의 폐수가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무심천으로 흘러들어 하나 뿐인 무심천을 더럽히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라 아니할 수 없다.
비 개인 날 아침, 무심동로(無心東路)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다 보면, 도로 변 수양버들이 밤새 머금었던 빗물을 어깨 위로 떨어뜨릴 때, 그 상쾌함이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무심천과 함께 청주의 상징인 우암산은 청주 시가지에서 바라다보면 마치, 소(牛)가 누워 있는 형상으로 명암동, 내덕동, 우암동, 수동, 대성동, 율량동, 용담동에 걸쳐 있으며 그 지맥이 탑동에 까지 뻗쳐있다.
청주의 귀문(鬼門)에 해당하는 이 산은 그 형상을 본 따 와우산(臥牛山 - 1970년 4월 8일 무너졌던 마포의 와우 아파트 뒷 산을 생각하면 되겠다)이라고도 불리 운다. 해발 339m의 이 산은 침엽수와 활엽수가 울창한 삼림을 형성하여 계절마다 갖가지 풍경을 청주 사람들에게 선물할 뿐만 아니라 등산로가 마련되어 있고, 우암산 순회도로는 그 호젓함과 아늑함에서 어느 도심의 산보다 뛰어나다.
그러고 보면 청주는 맑고 깨끗한 전원도시로서, 계절마다 다양하게 변하는 시내 진입로의 '가로수터널'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마다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인해 전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소가 되어있다.
나는 청주에 2년 남짓 살면서 터 잡고 살지는 않을 '나그네'의 입장이었던 지라 하루하루 새로운 정을 쌓았고 그동안 지기(知己)도 많이 얻게 되었다.
옛 선비가 무심하다 노래했던 정진원의 그 여인은 무심천의 흐르는 물 따라 가고 없지만 정이 많은 청주 사람들을 많이 만났음에 더욱 더 애착이 가는 것은 아마도 인지상정일 게다.
청주에 머물던 어느 날, 서울에서 은사 두 분이 찾아 주셨을 때, 나도 모르게 상당산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청주지방은 옛날 삼국 간의 국경지대였기 때문에 군사상 요충지대를 이루어 산성이 산재하고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사적212호로 지정된 상당산성(上黨山城)이다. 청주에서 동으로 7.5km, 청주시와 청원군의 경계를 이루는 상당산 위에 축성된 석성(石城)이다.
상당성의 성채(城砦)는 대부분 화강암을 이용, 내탁(內托)공법으로 축성하여 한국 산성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상단산성 안에는 옛 정취 그윽한 한옥마을이 조성되어 있어 토속음식점에서는 동동주를 비롯하여 도토리묵, 빈대떡, 오골계 등으로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토속적인 맛을 선사하고 있다.
청주에 살면서 상당산성은 솔직히 나도 초행길이었으므로 택시기사에게 안내를 부탁하였고 입성을 해 보니 듣던 바 그대로였다. 마침 두 분 교수님께서도 훌륭한 곳이라 칭찬을 아끼지 않으니 그 날 저녁은 산성의 오두막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사제간의 정을 도타웁게 할 수 있었다.
자고로 양반고을이라고 일컬어지는 청주(淸州)에 대해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은근히 자랑하고 싶어지니, 나도 모르게 청주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갓진 청주역에서 충북선(조치원 - 제천)을 타고 여행하노라면 차창으로 지나치는 넓은 들녘과 높고 낮은 산, 간이역사(簡易驛舍)가 정겹게 마주쳐 오고, 싱그러운 바람과 함께 누런 가을을 흠씬 적시면, 걸레스님 중광(重光)의 무애철학(無碍哲學)을 알 듯도 싶고, 그의 시(詩)와 그림을 흉내 내고 싶어진다.
청주에서 그리 멀지 않은 초정 약수터에 가면 그 맑은 샘물이 우릴 반기는데, 대도시의 화학음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운보(雲甫) 화백이 드나들던 버섯찌개집도 좋고, 백파(伯坡)선생이 들렀던 명관(明館)에 가서 그가 결코 만나지 못했다던 미인 여주인과 대화를 나누어도 좋을 것이다.
조기청소를 하는 날이 아니더라도 나는 가끔 휴지주머니와 집게를 들고 무심천변을 청소했었다. 남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조금씩 치웠는데, 특히 집에서 가까운 내덕동 쪽 무심천 하류는 거의 매주 쓰레기를 주웠지만, 오염이 심한 수질 탓에 악취가 심해 코를 막지 않으면 곤란할 정도였다.
무심천을 살리려면 한 두 사람의 힘으론 어렵고 행정적인 차원에서 뒷받침이 있어야겠다. 우선 실시 가능한 방안으로는 상류에 위치한 대청댐의 담수를 단계적으로 방류하고 청주시민을 비롯해 충북도민 전체가 무심천을 살리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펴 나가야 할 것이다. 한강종합개발계획의 성공적인 추진으로 죽어가는 漢江을 소생시켰듯이 청주의 젖줄인 무심천을 철새가 부담 없이(?) 찾아드는 깨끗한 곳으로 만들어 청주사람들의 진정한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매년 무심천에서는 종이배 띄우기대회를 열고 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참가할 수가 있어 모두가 옛 정취를 즐기는데, 역시 물이 깨끗해야 참가한 사람들의 신명이 날 것이고 이러한 행사도 의미 있는 만남의 광장이 될 것이다.
양반고을 청주가 문자 그대로 '맑은 고을'이 되어 샘물같이 맑고 깨끗한 무심천을 도심 한가운데 두게 될 때, 다시 나그네가 되어 찾아 갈 것을 굳게 다짐해 본다.
2.필자가 꼭 40년 만에 충청북도 도청소재지인 청주를 찾은 것은 다음과 같은 목적이 있어서이다. 다름아닌 산림청과 연계한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에서 목하 진행 중인 2024 전국 수목원 ․ 정원 스탬프 투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국에 조성되어 있는 국공립, 사림 수목원과 정원이 총 76곳인데 그 중 44곳을 스탬프투어 운영기관으로 지정하여 탐방객이 일일이 찾아 다니며 스탬핑하고 스탬프 투어 운영기관 최초 3개 달성 시에는 사라져가는 꿀벌과 나비를 살리는 반려식물(스위트 바젤) 교육키트를 받을 수 있고 그 이후 6개부터 3개씩 달성할 때마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우리 꽃 자생식물 주화(鑄貨)와 케이스를 별도로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필자는 지난 5월 24일 경기도 부천의 무릉도원수목원을 세 번째로 스탬프투어 마치고 그 자리에서 스탬프 투어 기념품 신청서를 작성, 제출하고 반려식물 키트 - 스위트 바젤 화분을 받아서 잘 키우고 있으며 이 글을 쓰는 현재 23곳 수목원 ․ 정원 스탬프를 날인 받아서 국립세종수목원으로부터 우편으로 해당 기념주화를 받았고 또 기다리고 있는데 대단히 보람된 프로그램이지 싶다.
지난 8월 2일에는 청주를 떠난지 꼬옥 40년 만에 청주 미동산수목원을 찾기 위해 차를 몰아 원래 충북 청원군 미원면이었다 최근에 청주시로 편입된 청주시 상당구(上黨區) 미원면(米院面) 수목원길 51 소재 미동산수목원으로 달려 갔다. 든던 바대로 청주 미동산 수목원은 산림과학박물관, 목재문화체험장, 산림환경생태관, 산야초전시원 등 산림 테마 전시 ․ 체험 시설을 두루 갖춘 충북 청주시 공립수목원이었다. 다시 대전 한밭수목원으로 향하면서 꿈에도 그리던 청주 상단산성으로 발 길을 돌렸는데 감회가 남달랐음은 물론이다.
청주는 삼한시대에 마한의 땅으로 백제 시대에 이르러 상당현(낭비성 또는 낭자곡)이라 칭하고 군사적 요충지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자 지리적 중요성으로 인해 5소경중의 하나인 서원경으로 승격, 지방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청주로 지명을 개칭하였으며, 고려 우왕 3년(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를 간행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 수운이 발달한 충주가 교통의 요지로 부상함에 따라 청주는 상대적으로 발전이 정체되었으나 1905년 경부선철도 개통과 함께 발전의 전기를 맞게 되었으며, 1908년에는 관찰사가 충주에서 청주로 이전되었다. 1920년 충북선개통은 지역발전을 획기적으로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으며 1946년에 청주부와 청원군이 분리되었고 1949년에 청주시로 승격되었다.
그 후 행정동 분동, 청원군 편입 등에 거쳐 1989년 7월에 2개의 출장소(동부·서부)가 설치되었고 1995년 1월에 출장소가 구(동부-상당, 서부-흥덕)로 승격되었으며, 지금은 1946년 6월 1일 분리 되었던 청주·청원이 2012년 6월 통합이 확정되어 2014년 7월 1일 통합 청주시로 출범하였다.
따라서 필자가 40년 전 청주에 살 때에는 그냥 청주시 내덕2동이었는데 그 이후에 청원군 일부(사주면, 강서면, 강내면, 남일면 등)가 청주시로 편입되면서 청주시는 면적으로도 훨씬 확장되었고 인구면에서도 광역시급에 육박할 정도로 비약적으로 증가, 발전하였다. 따라서 청주시는 4개의 구(상당구, 흥덕구, 청원구, 서원구)로 나뉘었으며 그 중에서 시청 등 중심지역은 상당구(上黨區)로서 청주의 옛이름인 상당현(上黨縣)이 상당구로 바뀌었다 볼 수 있다.
과거 삼국시대 때 군사요충지에 걸맞게 석성이 구축되어 있는 상당산성에 40년 전 대학 은사님 두 분이 찾아 와 셋이서 같이 사제지정을 나누었던 그 상당산성을 탐방하는 감회가 어찌 새롭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위에서 밝혔듯이 청주시의 면적 확충은 물론 도시 인프라를 얼핏 보건대 40년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었달 정도로 명실상부한 대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산성에 오르면서 잘 보존된 성곽과 해발 491.5m라는 상당산(上黨山) 정상석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으며 상당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맑은고을 청주시가지와 시내 한 가운데를 흐르고 있는 무심천(無心川)과 무심천교 등을 바라보는 나그네의 마음이 암연히 수수로웠다 하면 지나친 감상일까도 싶다.
그런 연유였을까. 최근에는 청주 토박이 작곡가 한 분이 제게 자료 요청을 해 온 적이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무심천 연가(戀歌)라는 노래 작사 ․ 작곡을 하던 중 인터넷 검색으로 40년 전 저의 <무심천 둑길에 서서>라는 글을 읽고서 무심천 연가 작사 ․ 작곡에 따른 무심천(無心川) 유래 및 노래 소개글에 넣고 싶으니 제 글을 출처로 게재해도 되는지 부탁을 곁들였던 것인데 흔쾌히 그리 하십사 했다. 그 이후 딱 맞는 가수가 취입한 <무심천 연가> 음원이 수록된 너튜브 동영상을 보내 왔고 그 작곡가는 개인 카톡으로 신곡을 작곡할 때마다 제게 상의하는 등 인연을 이어가고 있으니 40년이란 길고 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맑은 고을 청주(淸州)와 맺었던 인연은 일시적이 아닌 계속성의 원칙이 견지되고 있어 자못 흥미롭고 뿌듯하지 않을 수 없어서 이와 같은 생각의 편린을 남긴다. 물론 전국의 국립공원, 국가유산(문화유산에서 개칭됨)과 수목원 ․ 정원 스탬프 투어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 나갈 예정이다.
(62회 임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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