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축하해(78회.류미영)
류미영(78)
14시간 17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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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핀란드에는 매년 10월 13일, ‘실패의
날’이 있다.
“우리는 실패를 통해 배웠다”는 사실을 유쾌하게 나누는 날이다.
실패담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며, 그 과정을 하나의 자산으로 기록한다.
이런 문화는 실패를
‘개인의 치부’가 아니라 ‘모두의
배움’으로 바꾼다.
그때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질문하고, 조금 더 용기 있게 도전할 수 있다.
요즘 우리는 참 숨
가쁘게 산다.
SNS를 열면 모두가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침형 인간, 꾸준한 운동, 반짝이는 성과들…
세상은 마치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한 방향의
깃발만 흔드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아주
작은 실수 하나에도 마음이 움찔한다.
조금 늦어진 선택, 기대에 못 미친 결과가 어느새 내 능력과 가치를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패는 ‘경험’이 아니라 ‘낙인’이 되어버린다.
이런 과도한 압박은
사람의 마음을 서서히 병들게 만든다.
실패가 두려워서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고, 결국
스스로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포기하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나 자신’이 된다.
우리는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다.
“모든 일은 완벽해야 해.”
이 문장이 마음속 기준이 되면, 작은 실수 하나도 이렇게 번역된다.
“나는 항상 부족한 사람이야.”
실패는 곧바로 ‘내가 가치 없다는 증거’가 된다.
이 믿음은 부끄러움을 넘어, 존재 자체를 흔드는 고통으로 이어진다.
이런 성공 강박의 그림자는 이미 우리 곁에 있다.
2024년 기준 만 19~34세 청년 중 약 5.2%가 사회적 고립상태로 분류되며 이는
약 24만 4천명에 달한다
이러한 최근 통계들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수의 은둔형 외톨이가 존재함을 전한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한다.
“완벽하게 보이지 않으면, 차라리 나오지 않는 게 낫다고 느꼈어요.”
실패가 두려워 관계를 피하고,
실패할까 봐 도전을 멈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가장 잔인한 말을 던진다.
“너는 왜 이정도 밖에 못 해?”
실패의 원인을 환경이나
상황에서 찾기보다 오직 ‘내 결함’으로만 몰아가는 습관.
이 끝없는 자기 비난은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마침내 시도할 용기마저 앗아간다.
이 모습은 우리 사회가
실패를 얼마나 냉정하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완벽주의라는 독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마비시키는지, 그 극단적인 단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마음이 건강해지기 위해 우리는 실패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심리학은 조심스럽게
방향을 바꾸어 제안한다.
실패를 부끄러운 사건이 아니라 “여러 번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배웠으며,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보라고.
이것이 바로 성장
마인드셋이다.
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실패는 배움을 위한 신호야.”
실패는 끝이 아니다.
실패는 피드백이 된다.
결과가 성공이었는지
아닌지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것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마음의 근력,
그리고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다음에 쓰는 지혜다.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이는 대신 이렇게 질문해보면 어떨까.
“이번 시도에서 내가 얻은 건 무엇이었지?”
그 순간, 성장은 이미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말해보고
싶다.
실패를 축하해보자고.
실패를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책임이 아닌 학습으로 바라보는 시선.
그 시선이 한 사람의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
실수해도 괜찮다.
넘어진 횟수는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해온 횟수이기도 하니까.
실패는 부끄러움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 움직이며 도전해왔다는 가장 정직한 성장 기록이니까.
류미영(인인in:人)마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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