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갯마을 감감이(2025년 인천 문단54호 수록 단편소설) > 덕수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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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마당

서산 갯마을 감감이(2025년 인천 문단54호 수록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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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리자
2025-07-27 13:26 32 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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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항암(56회, 소설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중왕리 왕산포구는 내륙 깊숙이 파고드는 가로림(加露林)만에서 안쪽 위치했다. 가로림(加露林)만은 길이 25km, 2 ̴ 3km에 달하는 물길과 서산과 태안 사이 남쪽으로 길게 만입 된 지형으로 되어 있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고, 수심이 얕아 갯벌이 잘 발달 되었다.

간조 시에는 만(바다가 육지로 쑥 휘어져 들어간 곳) 전체의 3분의 2는 갯벌로 드러나 있다. 이렇다 할 관광시설도 별로 없이 주변 갯마을은 한적한 장소였다. 자연 그대로의 풍광 속에 광활한 바다와 어촌의 정취를 즐기기에 좋았다. 가로림(加露林)만 주변 육지는 해발 고도 100 ̴ 300m 안팎의 완만한 구릉으로 되어 있다.

갯벌을 해안에서 바다로 갈수록 모래에서 흙으로 바뀌었다는 말의 뜻은 모래갯벌, 혼성 갯벌, 펄 갯벌이 고루 분포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갯벌마다 모래갯벌을 따라 바다로 수 km 달하는 길이 나 있다. 어민들은 썰물 때, 길을 따라 갯벌로 나가서 낙지, 바지락, 굴 등을 채취했다.

바닷길은 물때에 따라 잠겼다가 드러나기를 반복했다. 아주 드물게 발생하는 일이기는 해도 모세의 기적’, ‘신비의 바닷길이라 불리는 현상이 가로림만에서의 일상이었다. 가로림(加露林)이라는 말은 이국적이면서도 부드럽다. 한자 그대로 풀면 이슬이 모여 숲을 이루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아침저녁은 물론이고 한낮에는 수시로 바다 안개가 깔리기 때문이라고 해석이 되었다. 바닥에 얇게 깔린 안개는 하얗게 수평면을 이루어 주변의 섬과 육지를 때때로 몽환 속으로 밀어 넣었다. 왕산포구 바로 앞에는 작은 섬이 있다. 물이 빠지면 사람들의 왕래로 자리가 잡힌 길을 따라 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섬과 포구 사이의 바다는 간조에는 물이 완전히 빠져 있고, 갯골이 형성되어 있다. 마을의 작은 어선도 이곳 갯골에서 물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다가 출어하곤 했다. 간간이 외지에서 온 강태공이 바다나 갯골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고, 어민들은 갯벌에서 캐온 굴을 짭짤한 바닷물로 씻었다.

왕산포구는 갯벌과 바다를 무대로 살아가는 어촌 사람들이 활동하는 삶의 현장이었다. 1943, 여자로 태어난 열 살 감감이는 썰물 때 갯벌로 나가서 호미로 조개를 캐고 굴을 땄다. 간혹 큰 돌멩이 밑을 더듬으면 커다란 꽃게나 낙지도 잡혔다. 밀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서둘러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오늘 조금밖에 굴을 못 캤어요. 조개도 조금 캤네요. 그리고 바위틈에서 주꾸미하고 꽃게도 잡았네요. 내일 많이 해올게요.”

아이고, 우리 감감이가 수고했구나. 이것도 너하고 내가 먹기는 많다.”

감감이는 몸이 아파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 임포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엌으로 들어가서 저녁밥을 짓고 반찬을 장만하느라 서둘렀다. 감감이는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저녁밥을 먹으려고 밥상을 들고 방안에 들어왔다. 변변찮은 밥상이지만 어린 딸이 차린 음식이어서 고마워했다.

너의 엄마가 살았으면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고생시켜 미안하구나.”

아버지 그런 말씀이 어디 있데요. 저는 열 살이 되어서 어지간한 살림을 할 수 있어요. 제 걱정하지 마시고 어서 쾌차하세요.”

비록 초라한 저녁밥이지만 부녀가 마주 앉아서 맛있게 먹으면서 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서 어둠이 깔렸다. 밥상을 윗목에 밀어놓고 이불을 편 다음 잠을 청했다. 감감이 아버지 임포구는 먼저 곁을 떠나간 아내 단예를 생각하다 보니 잠이 오지 않아서 몸을 뒤척거렸다.

, 모든 일이 내 잘못이야. 형편만 넉넉했어도 어선을 타고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았으면 아내를 잃지 않았을 텐데 몇 푼 벌려고 출어했던 것이 이렇게 되었어.”

딸아이 감감이가 일곱 살 때였다. 감감이 아버지 임포구는 조그마한 어선을 부리는 선주였다. 부자는 아니어도 세 식구가 살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그는 조금이 지나서 사리가 가까워지자 고기를 잡으려고 선원 두 명과 출어했다. 바다에 닻을 내린 다음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았다.

감감이 아버지가 올 때가 지났는데 어째서 오지 않지. 집에서 노느니 갯벌에서 조개나 캐와야지. 감감아. 엄마가 조개를 캐올 테니 집에 있어라.”

, 엄마.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감감이 어머니 단예는 남편 임포구를 기다리다가 바구니와 호미를 가지고 바닷가 갯벌로 나갔다. 오늘따라 호미로 갯벌을 파도 조개가 별로 나오지 않았다. 조금만 더 노력해서 조개를 잡으려고 하는 사이에 예전보다 왕산포구로 돌아갈 시간이 늦어졌다.

아이고, 벌써 밀물이 들어오네. 어서 나가야지.”

간조가 지나서 밀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닷물이 발밑까지 찼다. 감감이 어머니 단예는 허겁지겁 바구니를 들고 뭍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들 물에는 용뺄 재주가 없을 정도로 물이 들어오더니 어느새 허리까지 올라왔다. 바닷물이 빙빙 돌아서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만 맴돌았다. 바닷물이 차서 땅바닥에 발이 닿지 않았다.

아이고, 이러다가 무리 감감이도 못 보고 죽겠네. ̴

헤엄을 쳐서라도 밖으로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녀는 바닷물 속으로 끌려서 들어간 다음 고개를 한 번 내민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다. 감감이는 그것도 모르고 어머니 단예가 조개를 캔 다음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엎드린 채 잠이 들었다.

엄마가 왜 안 오지. 벌써 아침인데.”

아침이 밝았다. 어머니 단예는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감감이는 어머니 단예가 바닷물에 빠져서 죽은 줄 모르고 집에 오기만을 학수고대했다. 하루가 지났다. 일곱 살 감감이는 어머니 단예가 해놓은 식은밥을 몇 번 떠먹었다. 다음날도 오지 않았다.

계셔요,”

누구세요.”

나는 면사무소 직원인데 어른들 계시냐.”

아무도 없어요. 아버지는 어선을 타고 고기 잡으러 갔고요. 어머니는 조개 캐러 갔는데 아직 오지 않았어요.”

그렇구나. 아가야. 놀라지 마라. 너의 어머니는 바닷물에 빠져서 돌아가셨다.”

일곱 살 감감이는 면사무소 직원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면사무소 직원은 이 사실을 면장과 동료 직원들에게 말했다. 면장은 당장 먹을 음식과 구호양곡을 감감이에게 보내주었다. 감감이 아버지 임포구가 돌아와서 확인하도록 감감이 어머니 단예의 시체를 야산에 매장했다.

감감아, 너의 어머니는 돌아가셔서 오지 않는다. 너의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면사무소 아저씨들이 자주 들릴 테니 먹고 싶은 음식하고 필요한 물건을 말해라. 그럼 아저씨들이 가져다줄 테니. 알았지.”

, 아저씨.”

감감이는 면사무소 직원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아버지 임포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임포구는 벌써 한나절이 되었는데도 어쩐 일인지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사리가 지나고 조금이 다가오자 고기를 잡으러 나갔던 어선들이 왕산포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감감이 아버지 임포구는 뒤늦게 왕산포구로 들어왔다. 갯골에 닻을 내리고 집에 왔다. 예전 같으면 아내 단예가 보일 텐데 집안이 조용하면서 그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항상 하기가 넘치던 집안 분위기가 스산하고 어두웠다. 그는 그동안 집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몰라서 궁금했다.

감감아, 어디 있느냐. 감감아. 아빠다.”

아빠, 언제 왔어.”

지금 왔다. 엄마는 어디 있냐.”

, 면사무소 아저씨가 그러는데 엄마가 죽었대.”

이것이 무슨 말이냐. 엄마가 죽다니.”

엄마가 조개 캐러 갔다가 물에 빠졌대.”

임포구는 딸아이 감감이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벌건 대낮에 청천벽력도 유분수였다. 임포구는 아내 단예에 대한 일을 자초지종 알아보려고 면사무소로 달려갔다. 정신이 희미해지고 다리에 힘이 없어서 금방 쓰러질 것 같았다. 면사무소에 도착했을 때는 몸이 굳어져서 한 발짝도 옮기기 힘들었다.

수고들 하세요. 왕산포구에 사는 임포구입니다. 혹시 제 처가 죽었을 때, 도와주신 주사님이 어느 분이지요.”

, 감감이 아버지신가요. 저기 계시는 면장님과 직원들 모두 감감이 어머니 일로 고생하셨습니다.”

면장님, 제 딸을 보살펴주시고 아내를 임시 매장이라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우리가 남입니까, 그리고 감감이 어머니는 뒷산에 정성껏 산소를 썼으니까. 가셔서 둘러보시고 손 볼 부분이 있으면 마무리하시지요. 어쨌든 감감이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올릴지 모르겠습니다. 혹시라도 저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힘 닫는 데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임포구는 면사무소를 나와서 힘없는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면사무소 직원이 가르쳐준 뒷산으로 아내인 감감이 어머니 단예의 산소를 찾아갔다. 면사무소 직원들이 산소를 정성스럽게 돌봐주어서 고마웠다. 하지만 고인이 된 단예는 남편인 그가 왔어도 반기기는커녕 바람 부는 소리만 귓전을 스쳤다.

임포구는 일곱 살인 어린 딸아이 감감이를 두고 고기잡이를 나갈 수가 없어서 한동안 집에서 지냈다. 간간이 딸아이 감감이를 데리고 바닷가에서 낚시질하고 갯벌에서 조개를 캤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면사무소에서 주는 구호양곡과 갯벌에서 캐는 조개나 굴을 팔아 호구지책을 면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면사무소에서 극빈자에게 조금씩 가져다주는 구호양곡으로는 두 식구가 살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1년 정도 집에서 지내는 동안 가정형편이 궁색해서 말이 아니었다. 반면에 딸아이 감감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서 나이답지 않게 집안일을 척척 해나갔다.

감감아, 아빠가 우리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다녀올 테니 혼자 지금처럼 밥해 먹고 지낼 수 있지.”

아빠, 다녀오세요. 아빠가 올 때까지 밥해서 먹고 지낼 수 있어요.”

그래, 내 딸아. 불조심하고 갯벌에 나가서는 안 된다.”

알았어요. 아빠가 오면 같이 가요.”

감감이 아빠 임포구는 출어 준비하느라 그동안 갯골에 묶어두었던 배를 손질하고 어구를 준비했다. 조금이 지나자 이웃 마을에 사는 선원 두 명과 같이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 어선이 주낙배보다 조금 커서 먼바다까지 나가기는 위험이 많았다.

아이고, 오늘따라 고기가 너무 많이 잡히네요. 오늘 저녁 늦도록 작업하면 내일은 만선이 될 것 같네요.”

오랜만에 고기를 잡으러 나와서 그런지 오늘따라 만선 꿈이 영글어 가는구먼, 모두가 자네들이 도와준 덕분일세.”

가능하면 근거리에서 고기를 잡은 다음 왕산포구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임포구는 같은 마을에 사는 후배 선원 두 명과 그물을 치고 고기 잡는 일에 정신을 집중했다. 한밤중에 갑자기 태풍이 불었다. 일기예보에서도 말하지 않았던 태풍이었다. 왕산포구로 돌아가려고 그물을 건지고 닻을 올렸다.

어서, 포구로 돌아가세. 날씨가 변덕스러워서 안 되겠네. 이럴 줄 알았으면 낮에 돌아갈 것을 그랬네.”

밤새 날씨 안녕하시냐는 말이 이럴 때 두고 하는 말 같네요.”

임포구는 선원들과 서둘러서 조업을 끝냈다. 닻을 올리고 포구를 향해 키를 잡았다. 갑자기 배가 쿵 소리와 함께 바위에 걸려서 움직이지 않았다. 바닷물이 배 안으로 콸콸 쏟아져서 들어왔다. 배를 움직일 수 없어서 진퇴양난이었다. 더구나 사방이 암흑에 싸여서 한 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이제는 영락없이 죽을 일만 남았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세.”

이런 변이 있나요. 꼼짝달싹하지 못하겠으니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네요.”

바닷물이 갑판 위까지 들어왔다. 배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이제는 모든 것은 하늘에 맡길 뿐, 뾰족한 대책이 서지 않았다. 세 사람은 일단 바다로 뛰어들었다. 구명조끼라도 입었으면 되련만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 어두운 밤에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지 못하고 헤엄을 쳤다.

밀물 때여서 그런지 바닷물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세 사람은 개미 챗바퀴를 돌 듯이 물 위를 빙빙 돌다가 소용돌이를 튼 물속으로 가라앉아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선원 두 사람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선주 임포구는 얼마나 살아보려고 애쓰다가 정신을 잃은 채 바닷가까지 떠밀렸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밤새 지붕이 날아갈 정도로 불던 태풍이 언제 그랬느냐는 것처럼 잠잠해졌다. 어젯밤 태풍이 불었다는 사실을 접한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몰라서 걱정했다. 어제 출어했던 선주 임포구와 이웃에 사는 선원들이 무사한지 걱정되어서 바닷가로 나왔다.

어젯밤에 불어닥친 태풍으로 선원 두 분은 사망하고 선주 임포구는 심정지 상태로 구제가 되어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일이야. 엊그제까지 멀쩡했던 사람들이 죽다니. 그나마 임씨라도 살아서 다행이기는 해도 밤새 안녕하냐는 말이 틀림없구먼.”

감감이 아버지는 생업으로 가지고 있던 조그마한 어선이 좌초되어서 살길이 막막했다. 허리를 다쳐서 방안에 누워 꼼짝하지 못했다. 여덟 살 어린 딸 감감이가 생계를 꾸려가야만 하는 기구한 운명이 되었다. 이제는 별도리 없이 면사무소에서 주는 구호양곡으로 끼니를 이어가는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아빠, 식사하세요. 오늘은 면사무소 아저씨가 약식을 가져다주어서 쌀밥을 했네요. 그리고 어저께 갯벌에서 캐온 조개를 넣고 된장국을 했는데 맛이 괜찮아요. 잡숴보세요.”

우리 딸, 벌써 열 살이나 되어서 많이 자랐구나. 너의 엄마가 살았으면 귀여움받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짠하구나.”

저는 괜찮아요. 엄마는 돌아가셨어도 아빠가 있어서 좋아요.”

그래, 고맙다. 어서 밥 먹자.”

그는 몸이 덜 아프면 갯벌에 나가서 조개라도 캐서 팔아야만 입에 풀칠이라도 하면서 목숨을 부지해야만 되었다. 간혹 갯바위에서 낚시로 고기 몇 마리를 잡기도 했다. 감감이 아버지 임포구는 가는 세월은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아내와 사별한 다음 3년이 흘러서 딸아이 감감이가 열 살이 되었다.

항상 어리게 보았던 딸아이 감감이가 열 살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워졌다. 앞가슴이 불쑥 튀어나왔다. 엉덩이가 거짓말을 보태서 방석만큼 펑펑해졌다. 입술에 솜털이 나고 음성도 제법 굵어져서 어린이 티를 벗어났다. 비록 글눈이 트이지 않아 서운하기는 해도 예전 같으면 시집을 보내도 될 몸을 갖추었다.

세월이 흘러서 10년이 지났다. 감감이는 스무 살이 되어서 마땅한 혼처가 있으면 시집갈 나이가 되었다. 밤꽃은 냄새가 10리까지 퍼져서 벌과 나비를 불러온다는 말이 있듯이 윗마을에 사는 매파가 어떻게 알았는지 감감이 결혼 문제로 의논하려고 집에 왔다.

처녀가 된 감감이 몸에서 풍기는 암내가 멀리 윗마을 화천리까지 퍼져서 총각을 유혹하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매파는 감감이를 여러모로 살피면서 눈여겨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감감이는 집 근처를 지나가는 윗마을 아주머니가 잠깐 집에 들어와서 쳐다본 줄 알고 신경 써서 살피지 않았다.

감감이는 썰물 때가 되어서 바구니하고 호미를 들고 갯벌로 나갔다. 그녀는 조개를 캐고 굴을 따는 등 부지런히 움직였다. 바위 밑을 더듬어서 꽃게와 낙지며 오징어라도 있는지 살펴보았다. 방금 집에서 보았던 매파도 갯벌에서 조개를 캐고 굴을 땄다. 그녀는 감감이에게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 망설였다.

무슨 할 말이 있어 보이네요. 저의 집에서 뵙는데 다시 뵙게 되어서요.”

처자가 잘 봤네. 사실은 지곡면사무소가 있는 화천리에 사는 아줌마야. 우리 동네에 참한 총각이 있는데. 혹시 시집갈 생각 없어,”

저는 그런 것을 몰라요. 가난해서 결혼할 형편도 안 되지요. 더구나 병든 아버지를 보살필 사람이 없거든요.”

그런 것은 걱정하지 마. 이 총각은 집안이 큰 부자는 아니어도 먹고 살기에 지장이 없어. 아들이 다섯 명인데 막내아들이어서 분가해서 처자 가족들하고 같이 살아도 돼.”

하지만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나요. 아버지가 계신 데요.”

처자만 괜찮다면 내가 집에 가서 아버지하고 의논할게.”

감감이는 매파에게 결혼이라는 말을 듣자 갑자기 심장이 쿵쿵거리고 산란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겉잡지 못하도록 마음이 설레었다. 매파가 돌아간 다음에도 조개 캐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보통 때보다 덜 캔 조개와 굴을 바구니에 담아서 바닷물이 고인 웅덩이에 흔들어 씻은 다음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 감감이가 왔어요.”

그래. 그러잖아도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만 들어오너라.”

무슨 일이 있어요.”

다름이 아니라. 오늘 윗마을에 사는 매파가 다녀갔다. 아직 결혼시킬 형편이 아니라고 했다. 하기야, 예전에 열두어 살만 되어도 시집보내던 시절에 비하면 결혼해서 아이를 두어 명은 낳고도 남았을 텐데 스무 살이 되어서 늦은 것 같구나.”

사실은 제가 조개를 캐는 갯벌까지 따라와서 의향을 떠보았지요. 하지만 아직 결혼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어요.”

집안 형편이나 결혼할 예물이나 비용은 걱정하지 마세요. 결혼할 총각 집안이 큰 부자는 아니어도 먹고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거든요. 더구나 중매할 총각도 5형제 중 막내아들이어서 괜찮으시면 처가살이도 됩니다. 매파는우리 집 사정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갔다. ”

오늘 매파의 말을 들으니 네가 시집갈 때 되었나 보다. 다른 말 하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총각이 너하고 결혼한 다음에도 우리 집에서 같이 살겠다니 그보다 더 고마운 말이 어디 있냐.”

제가 무엇을 아나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할게요.”

배고프다 어서 밥해 먹자.”

임포구는 딸아이 감감이와 결혼에 대해서 말을 주고받았다. 어두운 밤이 점점 깊어갔다. 아버지 임포구와 딸아이 감감이는 밥상을 윗목에 물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럴 때 아내 단예만 살았어도 얼마나 든든할까 생각하니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은 그리움이 사무쳤다.

감감이는 결혼이 급작스럽게 진행되자 무슨 일이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서 아리송했다. 고마운 것은 동갑내기이면서 신랑 될 이호식이 결혼한 다음 아버지를 모시고 처가살이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녀는 매파의 말 대로 사흘 후, 시댁에서 보낸 가마를 타고 시댁으로 갔다. 결혼식이라고 해서 특별나지 않았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음식 몇 가지를 차려놓았다. 매파의 주선으로 서로 맞절한 다음 결혼식이 끝났다. 감감이는 가난해서 이나마 엄두조차 내리 못하는 일이었지만 시댁은 밥이라도 걱정 없이 먹고살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아버지 임포구가 있는 곧바로 친정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잘 다녀왔습니다. 인사받으세요.”

어서 오너라. 인사는 무슨 인사 이사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나저나 수고들 많다. 내가 작은 방에 너희가 살도록 신방을 꾸며놓았으니까. 방에 들어가서 편히 쉬어라.”

감감이와 신랑 이호식의 결혼식은 번갯불에 콩을 구워 먹는 것보다 빠른 일사천리 진행되었다. 신랑 이호식은 성격이 온순하고 부지런했다. 농어촌에서 자란 터라 어선을 타고 고기를 잡는 일 말고는 특별히 기술이 있거나 뛰어나지 않았어도 국민 학교를 졸업해서 글을 모르는 까막눈은 아니었다.

 

감감이와 호식이는 작은 방에 신방을 차리고 신혼생활에 들어갔다. 시댁에서 마련해준 이부자리를 펴고 신혼 첫날밤을 맞이했다. 큰방에서 혼자 잠잘 아버지 임포구가 걱정이 되어서 잠자리에 들 수가 없는 처지였다. 일단 아버지 임포구에게 이부자리라도 펴서 드리고 잠을 자야만 했다.

저기요. 큰방에 들어가서 아버지 이부자리 좀 펴서 드리고 올게요.”

그러세요. 기다릴게요.”

아버지 저예요. 감감이.”

왜 자지 않고 왔느냐.”

아버지 이부자리를 펴서 드리려고요.”

내가 해도 되는데. 그럼 펴라. 고맙다.”

아버지 죄송해요. 편히 주무세요.”

아니다. 피곤할 텐데 어서 자거라.”

감감이는 이불을 펴서 아버지 임포구의 잘자리를 살피고 밖으로 나오자 마음이 가벼웠다. 신랑 이호식이 기다리고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옷을 벗은 다음 방안에 켜놓은 등잔불을 끄고 나란히 누웠다. 하지만 서로 부부가 된 사이여도 낯설어서 그런지 마주하기가 어색하기 짝이 없는 처지였다.

죄송해요. 아버지 자리를 펴서 드리고 왔어요.”

괜찮아요. 제가 할 일을 하라고 해서 미안해요.”

고마워요, 이해해주셔서.”

당연한 일이데요.”

신랑 이호식이나 신부 감감이는 아직 성관계한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숨을 죽이고 가만히 누워있기만 했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잠이 오지 않았다. 두 사람은 부부라고 해도 첫날밤이어서 그런지 별다른 말이나 행동하지 않았다.

새벽을 알리느라 닭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서서히 동이 터서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신부 감감이와 신랑 호식이는 불편했던 잠자리에서 일어나 이부자리를 개고 벗어놓았던 겉옷을 주섬주섬 찾아서 입었다. 두 사람은 작은 방에서 나오자마자 안방에 있는 임포구에게 문안 인사하러 들어갔다.

아버지, 장인어른 안녕히 주무셨어요.”

오냐, 너희도 잘 잤느냐.”

,”

임포구는 잠에서 깨어나 아랫목에 앉아서 딸아이와 사위의 인사를 받았다. 신부 감감이와 신랑 이호식은 마당을 쓸고 밥을 짓는 등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아직은 서로 결혼해서 부부가 되었다기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서먹하고 불편했다. 이호식은 이것도 복이려니 하고 마음을 달랬다.

아버지 식사하세요.”

어서 오너라. 같이 먹자.”

, 장인어른. 식사하면서 한 말씀 드릴게요. 사실은 분가할 때 집에서 논 세 마지기하고 밭을 두 마지기를 주셨어요. 여기서 농사짓고 조금만 노력해서 보태면 밥은 먹을 수 있을 거라 말했지요. 당분간 먹고 살 식량을 충분히 보내시겠답니다. 살림살이 걱정은 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사셔요. 제가 아들 겸 사위로 모시겠습니다.”

고맙네. 이 서방. 우리 감감이를 잘 부탁하네.”

세 사람은 첫날부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가 오갔다. 신부가 된 감감이는 남편이 된 신랑 이호식을 대하기가 어제보다 훨씬 부드럽고 편했다. 두 사람은 아침 식사가 끝나자 설거지한 다음 가로림(加露林)만에 형성된 왕산포구 갯벌을 바라보면서 걸었다.

왕산포구 갯벌에는 아낙들이 조개를 잡느라 엎드려서 부지런히 손놀림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감감이도 조개 캐고 굴을 따는 아낙네들처럼 갯벌에서 일하고 있을 터였다. 신랑 이호식이도 배운 도둑이 뱃일이어서 마을 사람들 어선을 타고 바다에 나가서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았다.

우리 어촌 사람들은 어쩔 수 없나 봐요. 갯벌에 나가서 조개나 굴을 캐고, 어선을 타고 바다에 나가서 일해야만 되니까요.”

그러게요. 타고난 고향인데 어쩔 수 없잖아요.”

저는 국민 학교도 졸업하지 않아서 무식하지만 호식 씨는 글눈이 트였잖아요.”

그것이 무슨 상관이에요. 요즘 세상에 제대로 글을 배운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도 공부하지 못했어요.”

신랑 이호식은 신부 감감이의 처지를 위로했다. 왕산포구 주위를 걷다가 점심시간이 되어서 집에 돌아왔다. 부엌으로 들어가서 서둘러 밥상을 차림 다음 아버지 임포구가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신랑 이호식도 아내가 된 신부 감감이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와서 밥상 앞에 앉았다.

아버지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드세요.”

그래, 너희들도 같이 먹자. 이서방도 어서 들게.”

, 아버님.”

감감이는 밥상 아래에 밥그릇과 국그릇을 놓고 밥을 먹었다. 1963년도만 하더라도 남존여비 사상이 있어서 시골이나 농촌에서는 밥을 먹을 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여자는 겸상하지 않고 따로 밥그릇을 놓고 밥을 먹었다. 특히 아낙네들을 부엌에 모여 앉아서 밥을 먹는 경우가 허다했다.

감감아, 우리 집에서는 밥상 앞에 앉아서 같이 밥을 먹자.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에게는 사위나 딸이 귀중한 자식들이다. 그까짓 밥 몇 숟갈 먹는다고 방바닥에 내려놓고 먹느냐.”

아버지, 알았어요. 다음부터는 그럴게요.”

아버님 말씀이 맞습니다. 서로 불편하면 안 되지요.”

신부 감감이는 아버지와 신랑 이호식이 배려해준 마음에 고마웠다. 잘나거나 못났거나 아버지와 남편이 된 신랑 이호식을 극진하게 섬기겠다는 마음이 우러나왔다. 신혼 방에 들어와 이런 일 저런 일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마음에 담았던 이야기하는 사이에 한 가족이라는 일체감이 들었다.

왕산포구는 외딴 갯마을이어서 그런지 해가 질 때면 벌겋게 달아오른 쇳물처럼 선명한 해가 수평선 아래로 저물어갔다. 밤이 되면 어두워서 활동하기가 불편했다. 해가 수평선으로 넘어가기 전에 저녁밥을 지어서 먹었다. 오늘도 어느새 시간이 지나서 저녁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어갈 때가 되었다.

어서들 돌아가서 자거라. 늦었다.”

, 이부자리 펴서 드리고 갈게요.”

신부 감감이는 밥상을 윗목으로 밀어놓고 이부자리를 편 다음 신랑인 이호식과 작은 방으로 돌아왔다. 오늘을 어제하고 분위기가 안연히 달랐다. 서로 내외하는 사이가 아닌 가족이 되어서 아내와 남편으로 돌아갔다. 등잔불을 켜고 이부자리를 편 다음 겉옷을 벗은 다음 이불속으로 들어왔다.

이불속에 두 사람이 발산하는 온기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호식은 슬그머니 감감이의 손을 잡았다. 부드러운 손에서 따뜻한 체온이 감돌았다. 점점 몸이 뜨거워졌다. 왠지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숨소리가 빨라졌다. 두 사람은 뭐가 뭔지 잘 모르는 불덩이가 몸에서 솟구치는 감정을 느꼈다.

̴ , 더 이상 참지 못하겠어요. 고추가 막대기처럼 뻗치고 불두덩이 뻐근하게 아파서 숨쉬기가 힘들어요.”

저도 뭔지 잘 모르지마는 몸이 뜨거워지면서 불두덩이 아파요.”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몸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신랑 이호식은 신부 감감이의 속옷을 벗겼다. 허둥대면서 20년 동안 간직해온 금단의 문인 감감이의 자궁을 향해 막대기처럼 뻗친 고추가 육탄공격을 감행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섹스의 향연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바라던 일이었다.

̴ , 아파. 잠깐만이요.”

미안해요. 몸이 말을 듣지 않아요. ̴

두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져본 성관계였다. 감감이와 호식이는 성관계가 끝난 다음 본래의 자세로 돌아왔다. 감감이는 처음이어서 그런지 자궁이 아팠다. 처녀막이 파열되었는지 피가 흘렀다. 신랑 호식이는 육체의 본능이 시키는 대로 끝난 성관계가 아프면서도 새콤하고 짜릿했다.

누구나 처음이 어렵다는 말이 맞았다. 도둑질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다. 감감이와 남편 이호식은 밤을 지새우면서 섹스의 향연을 즐기느라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을 쏟아냈다. 새벽을 알리는 첫닭이 울고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난다는 일이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늦잠을 자고 말았다.

아이고, 무슨 일이야. 늦잠을 다 자고. 어서 일어나서 아버지 아침밥을 해드려야지. 여보, 호식씨. 어서 일어나요. 아버지 아침 문안을 가야지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치우고 세수를 하는 등 부산을 떨었다. 아버지 임포구가 있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아침 사를 올렸다. 밤새 사랑을 나누느라 늦어진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웠다. 부끄럽고 죄송해서 아버지 임포구의 눈치를 슬슬 살폈다.

그래, 잘 잤느냐. 그동안 피곤해서 늦잠 잤구나. 살다 보면 그럴 때도 있지 않겠냐.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아침밥을 해라.”

, 아버지. 다음부터는 늦잠을 자지 않을게요.”

감감이는 부엌에서 쌀을 씻어서 밥솥에 앉히고 밥물을 잡은 다읔 아궁이 불을 지폈다. 그리고 가족들이 먹을 아침밥을 지었다. 신랑 호식이는 안방을 말끔히 치운 다음 밖으로 나와서 아궁이에 불을 때는 등 감감이를 도와 아침밥 먹을 준비했다. 밥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구수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감감이와 이호식은 아침밥을 먹은 다음 손을 마주 잡고 왕산포구에 산책하러 나갔다. 가로림(加露林)만에 형성된 왕산포구 갯벌이 앞으로 살아갈 삶의 밑천을 대주고, 항상 먹을 식량을 장만해주는 고맙고도 귀중한 보배였다. 그들의 장래를 담보하고 앞으로 태어날 자식들과 고향을 지키면서 살아갈 귀중한 일터였다.

 

19643월 초순, 감감이와 이호식은 결혼 1년이 지나서 아들을 낳았다. 아들아이가 반드시 성공하라는 뜻에서 이름을 성공이라고 지었다. 이호식은 어선을 타고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으면 아내 감감이와 왕산포구 갯벌에 나가서 조개를 캐고 굴을 땄다.

감감이와 이호식은 서산 갯마을 왕산포구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즐겁고 삶에 대한 기쁨으로 가득했다. 더도, 덜도 바라지 않고 오늘처럼 가족이 함께 모여서 오순도순 즐겁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아마도 감감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가장 기쁜 나날이었다.

1966년이 되었다. 아들 성공이는 네 살이 되었다. 하지만 이별과 만남은 세상을 살아가는 철칙인지도 몰랐다. 그동안 함께 살던 아버지 임포구가 세상을 떠나서 아내 단예 곁으로 갔다. 감감이와 이호식 부부는 아버지 임포구의 장례를 치른 다음 슬픔에 잠겼다.

라디오에서 서산 갯마을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1절은 굴을 따랴, 전복을 따랴, 서산 갯마을 처녀들 부푼 가슴 꿈도 많은데 요놈이 풍랑은 왜 이다지도 사나운고. 사공들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구나. 2절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서산 갯마을 쪼름한 바닷바람 한도 많은데 요놈의 풍랑은 왜 이다지 사나운고, 아낙네들 오지랖이 마를 날이 없구나.’

가수 조미미가 부른 서산갯마을은 서산 어촌이 전해주는 은은하면서도 가슴 따뜻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풍경을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노래의 가사에 등장하는 굴과 전복에서 인정 많고 부지런한 어촌 여인들의 삶의 고단함을 말해주면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풍랑에 메마를 날이 없다.’의 구성은 항상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삶을 험난한 바다를 배경으로 펼치는 시련과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서산시 지곡면 중왕리 왕산포구에 조미미의 노래서산 갯마을노래비가 있다. 갯벌에서 풍기는 특유한 향취와 바다 주변이 보여주는 은은한 풍경을 감상하면서 여가를 즐기기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왕산 포구는 썰물이 되면 갯벌이 나타나서 조개를 캐고 바위틈에서 낙지와 꽃게를 잡는 어촌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었다. 스물다섯 살 감감이와 호식이 부부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조미미의 노래가 서산 갯마을 감감이의 애달픈 삶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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