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꾀병쟁이로 살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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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미영(78회,인인(in:人)마음연구소 소장)
지인 중 한 명이 결혼을 하고 처음으로 시댁에 갔을 때의 일화이다. 시어머니가 “이 나물 좀 볶아볼래?”라고 하셔서 “전 요리는 잘 못하지만 정리를 잘하니 설거지와 음식정리를 할께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 결과는 결혼 후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시댁에 가면 어느 누구도 음식준비를 시키지 않더란다. 그래서 시댁에 가서 다 해 놓은 밥상을 받는 며느리로, 그러나 직장과 가정에서 꽤 유능함을 인정받으며 잘 살아가고 있다.
또 다른 친구 하나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직장생활을 하며 아이 둘을 낳아 기르는 수퍼우먼으로 그 친구의 가정은 요즘 같이 편리하게 가사분담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장과 김치를 직접 담그고, 가족들이 싫어한다고 인스턴트 음식이나 외식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 친구는 낮엔 직장생활로, 퇴근 후엔 밤늦은 시간까지 동동거리며 집안일을 해 내느라 매일 몸의 곳곳이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산다. 그때마다 난 안쓰러운 마음에 “대충 좀 해”라고 이야기하지만 성실과 노력이 주 무기인 그 친구의 특성상 그게 쉽지 않은가 보다.
일상에서 우리는 능력을 검증해야 할 상황을 때때로 혹은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직장과 학교에서는 당연히 나의 능력치 중 많은 부분을 테스트하고 발휘해야 하며, 길을 가다 낯선 사람의 길 물음에 대답을 해 주어야 할 때도 있고, 아이가 요청해오는 크고 작은 부모로서의 미션을 완료해야 할 때도 있다.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 그 미션들을 수행하려 애쓰며 한계에 부딪히기도 하고,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우리는 매번 그 미션들을 모두 잘 수행해내야 하는 것인가?
지나친 목표 추구나 과도한 자기 요구는 오히려 심리적 부담과 스트레스를 초래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목표를 적절히 설정하고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균형 있게 사용하면 삶의 여러 영역에서 더 나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무리한 성취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필요할 때는 한 걸음 물러서서 쉬어가는 것이 중요한 심리적 전략일 수 있다.
"난 꾀병쟁이로 살테야"라는 선언은 뺀질거리는 거짓말쟁이가 연상되어 자칫 부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심리학적으로는 건강한 자기보호 메커니즘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기 결정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따르면, 사람은 스스로의 에너지를 통제하고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때때로 '꾀병'이나 적절한 핑계를 통해 스스로를 일에서 한 발 물러서게 만드는 것은 심리적 회복과 재충전을 위한 중요한 기제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사회적 기대와 자신의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울 때가 많다. 여기서 '꾀병'은 자신을 보호하고 필요 이상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연스러운 방어 기제로 볼 수 있고 이는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일 것이다.
완벽주의(perfectionism)는 불안, 우울증, 그리고 심리적 고갈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완벽주의적인 태도를 버리고, 목표를 조금 낮추며, 때로는 '꾀병쟁이'처럼 쉬어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건강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요즘의 지혜로운 워킹맘들은 ‘꾀병쟁이’ 전략을 이용해 에너지를 관리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직장에서의 책임과 가정에서의 역할을 모두 잘 해내려는 압박 속에서 지친 워킹맘들이 때로는 과도한 요구를 적절히 조절하고, ‘작은 핑계’를 통해 자신만의 휴식을 챙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집안일을 잠시 미뤄두고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 하루 휴가를 내어 혼자만의 호캉스를 누리는 것, 직장에서도 지나치게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려는 욕구를 내려놓고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필수적인 전략일 수 있다. 이를 통해 오히려 장기적으로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고, 가족에게도 더 좋은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많은 스포츠 선수들 역시 훈련과 경기를 열심히 준비하는 동시에, 적절한 휴식과 회복을 전략적으로 관리한다. 예를 들어, 축구 선수인 리오넬 메시(Lionel Messi)는 경기 중에서 모든 에너지를 한꺼번에 사용하지 않고, 필요할 때 집중적으로 에너지를 발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에너지를 아끼고 적절하게 분배하는 방식은 긴 시즌 동안 최고의 퍼포먼스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며, 선수들의 부상 위험을 줄이고 경기에서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난 살면서 단 한번도 1등을 목표로 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1등을 해본적도 없다. 그럼에도 타인으로부터 특별히 무능하다는 피드백을 받은 적도 없고, 삶의 만족도 역시 나름 나쁘지 않다. 에너지를 적당히 분배하며 응축했다가 정말 필요할 때 쏟아붓는 형이라 항상 활력이 넘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이는 나만의 에너지 배분 방법이고 장기전의 인생에서 매우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삶에 지친 당신… 가끔은 스스로 '꾀병쟁이'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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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식(78)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