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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마당

북녘 땅 오성산에 다가서며 - DMZ 너구리 카페를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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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택(62)
2025-02-11 10:27 81 1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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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땅 오성산에 다가서며

- DMZ 너구리 카페를 지나

 

                                                                                          詩人 임 순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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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923일 전격적으로 개통했던 전장 4,350코리아둘레길(해파랑길, 남파랑길, 서해랑길) 중 마지막 네 번째의 DMZ평화의 길 총 35개 코스 중 코스의 40퍼센트가 민간인통제선 구역 안에 포함된 제16코스를 단체 트레킹하였다.

사실 그보다 2년 여 전에는 강원도 평화누리길(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 20개 코스, 360.6를 나홀로 사전답사를 마치면서 그 구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 제3사단 백골부대 이길(二吉)검문소에서 막혔으며 해당 코스의 반대편 철원군 김화읍 도창리 도창(道昌) 검문소 초병에게도 가로막혀 코 앞에 솟아있는 오성산을 바라보며 눈물을 머금고 되돌아 왔던 곳이기에 더욱 더 설레였던 것인데 DMZ CAMP라는 사단법인에서 사전 예타를 거친 뒤에 대형 버스 1대로 단체 트레킹했던 때가 작년 20241130일이었으니 개인적으로 감개무량한 길나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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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점인 강원도 철원군 DMZ두루미철새평화타운에 들어가 행장을 수습한 뒤에 두루누비 앱으로 제16코스 출발 QR 코드 인증 받은 뒤에 철원군청 김 이사라는 분의 해설을 곁들인 리딩에 따라 비교적 질서 정연하게 걷기 시작했다.

DMZ평화의 길 제16코스 상에 있는 꽤 넓은 토교(土橋)저수지 둑방 아랫길을 걸어가는데 콘크리트 포장도로 위에서 멈추었고 해설사님이 야생동물의 분변이 쌓여 있는 것으로 가리키며 이 똥의 주인공이 무엇으로 생각하느냐는 물음이 있었는데 정답을 이야기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바로 야행성 동물인 너구리의 분변이라는 것인데 그곳은 너구리 가족의 영역표시이기도 하지만 흩어져 활동하던 너구리들이 모이는 소위 너구리 카페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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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있는 해설사님의 너구리 카페에 대해 경청하고 걷기를 계속하는데 바로 앞에 눈덮힌 가히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고봉이 펼쳐졌다. 길벗들 모두 궁금해서 산의 이름을 물었는데 북한 땅인 강원도 평강군 수태리의 오성산(五聖山)이라고 했다. 바로 코 앞에 우뚝 솟아있는 산이련만 남북 분단으로 오를 수 없는 오성산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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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성산(五聖山)은 대부분의 산지가 군사분계선 이북 북한 지역인 강원도 평강군 수태리에 있으며 일부 산줄기가 강원도 철원군 근북면과 근동면 경계에 있고 태백산맥에서 분기된 광주산맥의 고봉 중 하나로 높이가 해발 1,062m이며 산세가 웅대하고 수려하다. 광주산맥은 태백산맥의 금강산(金剛山) 부근에서 시작하여 남서 방향으로 서울 부근까지 이르는 산맥인 바, 임진강의 지류인 한탄강이 이 오성산에서 발원하며 오성산은 6.25 전쟁 당시 격전지였다는 설명이 있었다. 오성산의 명칭 유래를 찾아보면 웅장하고 기묘한 형상을 하고 있으며 소금강으로도 불렸으며 고문헌에서는 오신산(五神山)으로 표기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오신또는 오성이라는 명칭은 산의 형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즉 중앙에 본봉(1,062m)이 있고 동봉(927m), 서봉(1,050m), 남봉(781m), 북봉(920m) 등이 둘러싸고 있어 다섯 봉우리를 마치 신()이나 성인(聖人)으로 여겼기 때문에 붙은 지명이다.

오성산 일대는 1953727일 휴전 직전 한미 연합군과 북한군, 중공군이 치열한 다툼을 벌였던 곳으로 백마고지, 아이스크림고지, 김일성고지, 저격능선 등에서 격전이 있었던 곳이고 현재는 북한에서 대규모의 군사기지를 지하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실제 오송산의 저격능선 전투에 참여했었던 예비역 황규창님이 <내가 겪은 6.25> 4편에 기록한 전투상황을 보면 당시 인근 백마고지 전투 못잖게 치열했던 전투 상황을 엿볼 수 있는데 그의 오성산 전투 기록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195210월 계속 훈련을 하던 중 또 다시 부대이동 명령을 받고 김화 북방 오성산 계곡 서쪽 능선으로 미군(美軍)과 진지교대를 하였다. 그 시기는 19526월 경으로 기억한다. 우리 서쪽으로 598고지는 우리 진지보다 150~200미터 높고 거리는 약 300미터 직사화기 유효사거리 이내였다. 적군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 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598고지와 연계된 능선 봉우리는 미군 7사단이 방어 중으로 적의 고지보다 약 50미터 낮으며 적의 진지와도 약 100미터 거리에 있었다. 미군들은 기갑부대 지원으로 598고지인 적의 진지에 전차포로 하루에도 20여 발씩 발사하며 자기네 진지를 보호하고 있었다. 우리 중대 우측으로는 대대 오피(OP, Observation Post)와 타 중대가 연계된 능선은 스탈린고지로써 오성산계곡 능선, 일명 저격 능선이라 한다. 저격능선의 높이는 약 400고지 정도이며 아군진지보다 5~60미터 높고 주저항선과의 거리가 약 300미터로 진지보수 및 아군의 일거수 일투족 행동에도 매우 위험했다. 주간에는 머리털 하나 노출하지 못할 정도였다. 특히 능선 좌측에 우리 진지와 일직선으로 되어 있는 돌 바위로 형성된 적의 진지와 아군 진지와의 거리가 불과 100미터 밖에 되지 않아, 적의 저격수가 매복하여 아군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가 노출만 되면 총에 조준경이 부착되어 있어 백발백중으로 명중되므로 아군의 희생자가 많이 발생하여 저격능선이라 한다.

  우리 중대는 계속 진지구축 및 야간 잠복근무를 하면서 3개월 간의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소규모 기습작전은 있었으나 전투가 다소 소강상태였다. 동년(1952) 10월 초 아군 3대대가 31연대와 진지 교대 후 후방으로 이동하여 약 1주간 맹훈련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간접적으로 3대대가 저격능선을 공격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이번에 대작전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동년 1013일 오후 3시에 각 소대장은 중대장 진지로 모이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중대장이 하는 말이 101405시에 저격능선 공격을 개시한다는 명령과 함께 각 소대별 공격 위치를 지도상에 명시해 주었다. 드디어 1014일 새벽 2시경 식사를 하고 03시까지 공격대기 지점까지 도착하니 각 소대장과 중대장이 먼저 와 있었다. 04:30 경 고지 정상에 각종 포사격으로 천지가 진동하더니 05시가 되는 포사격이 멈추고 일제 공격 개시 명령이 하달되었다. 캄캄한 밤이지만 적정을 살피면서 목표를 향해 적으로부터 발각될 때까지 조용히 고지를 향해 침투했다. 7부능선까지 진격하던 중 어느덧 날이 밝아 쌍방의 행동이 노출되어 피아간의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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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은 6.25 참전 예비역의 전투일지를 읽으면서 북한의 남침으로 야기된 동족상잔 비극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어서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시려오는 것은 저토록 아름다운 눈덮힌 오성산 능선을 그저 낭만적인 감상만을 할 수 없는 연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영화 상감령6.25전쟁(1950.6.25-1953.7.27)기간 195210월 중순에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이 38선을 돌파하면서 중국인민지원군이 오성산을 사수하며 철원 평야를 둘러싸고 벌어진 상감령(저격능선)전투가 배경인데 철원 승리전망대에서 관측해 보면 상감령은 오성산(1062m)을 배후로 삼각고지(597.9m)와 함께 저격능선(sniper ridge,537.7m)사이에 위치하며 삼각고지에는 북서쪽에 파이크봉, 북동쪽에 제인 러셀고지, 남동쪽에 샌디능선이 있었다.

중국 인민지원군(당시 중공군)은 상감령 전투를 전쟁 막바지의 대공세였던 금성전투와 함께 한국전쟁에서 거둔 최대의 승리로 치켜 세우고 있다. 인민지원군은 1014일부터 1125까지 43일 동안 상감령에 지하갱도를 구축하고 고립하면서 치열한 공방전을 하였다. 갱도와 참호, 교통로 등이 지구 한바퀴 반 정도 또는 만리장성의 길이와 맞먹는다고 하였다.

UN군은 3개 사단 6만명 병력과 막강한 화력의 300문 이상의 대포, 170여 대의 탱크, 3000여 차례 항공기를 투입하면서 포탄 190만발, 폭탄 5000여발을 쏟아 부었다. 중국인민지원군은 3개 사단 4만 명과 낙후된 야포, 고사포, 박격포 등으로 35만발의 포탄을 발사했다. 사상자가 산을 덮을 정도였고 상감령 봉우리가 2m 낮아졌을 뿐 아니라 융단폭격으로 1m가 넘는 흙먼지가 쌓였다 한다. 이보다 앞서 미군과 한국군은 철의 삼각지인 철원, 평강, 김화를 확보하기 위해서 중국인민지원군이 1952106일 쌍십절을 앞두고 백마고지(395m)와 화살머리고지를 대대적으로 공격하면서 1015일까지 치열한 전투를 하였다.

  영화 상감령의 나의 조국노래는 중국의 풍경을 서정적으로 노래하면서 강대한 조국과 고향에 대한 애국주의 사상을 표현하였다. , 1956년의 영화 상감령에 삽입되었던 주제가 나의 조국(我的祖國)’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리허설 때 가장 먼저 울려 퍼진 곡이었다. 그리고 2011년 미국을 방문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을 위한 백악관 만찬행사에서 중국의 랑랑(郞朗)나의 조국을 피아노로 연주하였다. 또한 중국의 일대일로 확장정책으로 미국의 트럼프정부와 극심한 무역마찰을 겪던 2018년부터 상감령 정신을 고양하였다. 2019년 중국 화웨이(華爲) 창업주인 런정페이(任正非)회장은 우수한 인재를 이끌고 상감령으로 진격할 수 있다고 CNN과 대담하였다. 또한 2019, -중 무역분쟁으로 미국 트럼프(1) 대통령은 중국을 반복적, 지속적으로 압박했다. 이에, 시진핑 주석이 상감령 정신을 본받자며 공개적으로 반발하자, 미국이 기술 도둑으로 지목한 중국 최대의 통신업체 화웨이의 회장 린정페이(任正非)상감령 전투처럼 미국과 맞서겠다는 의지로 위기돌파를 다졌다. 또한, ‘환구시보도 홈페이지 환추왕()중미 양국 무역전쟁은 화해 방식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사설로 항미원조의 상징으로 선전한 상감령 전투에서 승리를 환호하는 사진까지 싣고 거듭 투쟁을 강조했다.

  중국의 신화가 된 오성산 능선 상감령 전투1956마오쩌뚱(毛澤東)의 지시로, 중국 정부는 상감령 전투는 신중국이 최강 미국과 싸워 이긴 스토리라며, 이 전투를 미국 공포증을 가진 중국인에게 미국에 승리한 기념비적 존재로 부각시키며, 홍보영화 제작으로 신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천안문 광장에 위치한 국가박물관에는 탄피 반, 흙 반인 오성산 흙을 떠다가 그 치열함을 전시하고 있다. ’마오쩌뚱, ’중공군이 압도적인 미군 화력을 극복하기 위해 오랜 기간 엄청난 희생과 노력으로 전선의 고지들에 지해갱도 진지를 구축하여, 그 결과 마침내 미군을 이긴 승리라며, ’미국 극복의 계기로 보는 관점에 큰 의미를 부여하였으며, 또한, ’미국과의 휴전협정은 미국의 콧대를 꺾은 사건으로, 이후 미국 사회가 중국을 전략적으로 존중하게 만들었다고강조하였다. 죽의 장막 속의 중국인은 세뇌되었다.

  이처럼, 미국에 승전했다는 자부심으로 상감령은 이른바, ‘굴기의 원조로, 미중 무역분쟁 등 미국이 중국의 핵심 이익에 충격을 줄 때마다 이 과거의 전쟁 망령을 오늘에 소환하여,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가 없는 기개로 중국의 근본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결연한 의지로 중국 사회를 응집시키며 결속을 다지자. 이제, 과거와 달리 무기와 탄약이 충분하니,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항하자라는 결의를 다진다.

  하지만, ‘상감령(전투) 신화는 절반의 진실이다. 그 속에는 많은 과장과 거짓이 섞여 있다. 백선엽의 회고록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에서 중국은 한반도에서 벌였던 이 전투를 상감령(上甘嶺) 전역(戰役)으로 부른다. 미국에 대항하며 북한을 지원하기 위한 전투, 즉 항미원조(抗美援朝)라고 중국이 적고 있는 한반도 참전 전투 중에서 최고의 승리를 거둔 싸움이라고 스스로 선전하고 있다.

  나는 저들이 왜 그러는지 의문이다. 저들은 싸움에서 졌고, 희생 또한 아군의 2배에 이를 정도로 막대했다. 그래도 결국 휴전 직전에 이곳을 차지했기 때문에 그렇게 적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싸움의 승패는 분명했다. 1952년 늦가을에 벌어진 저격능선 전투에서 중공군은 패퇴했고, 고지를 아군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분명한 패전(敗戰)이면서 왜 승전(勝戰)으로 적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종의 자체 선전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요컨대 당시 38도선 전역에서 갱도전을 펼친 중국(중공)군은 비록, 엄청난 희생이 있었지만 실패는 아니다라고 자평한다. 그들은 물과 식량이 부족하고 모자라는 가운데서도 잘 준비한 진지에서 압도적인 미군 공격을 격퇴한 정신력을, 이런 식의 승전을 통하여 과시하고자 덧칠된 신화를 만들어 냈을 뿐이다. 상감령 전투는 어느덧, 전 중국적인 신화로 미화되었다. 하지만, 불멸의 투혼으로 그들과 대등하게 싸웠던 우리 군의 기억은 그들의 교묘함에 미치지 못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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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리(萬里)가 넘는 우리나라 최장거리 트레킹 코스의 코리아둘레길 네 개 길 중에 마지막으로 개통했던 DMZ평화의 길 제16코스를 단체도보하는 중간 중간 해설사님의 상감령 전투에 얽힌 스토리텔링을 들으면서 착잡하지만 2025년 새해 벽두의 트럼프 2기 정부 출범과 맞물려 불행했었던 동족상잔의 비극을 되풀이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침잠하며 북한의 남아 있는 GP를 조망하고, 육군 3사단 백골전선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다가 등록문화재 제112호 철원 금강산 전기철도교량 위를 왕복한 뒤, 화천군과 철원군을 가로지르는 화강(花江) 남대천교에서 제16코스 종점 QR 코드 찍고 철원군 동송읍 이길2리 마을회관의 <두루미 지는 버들골> 식당에 들어가 부녀회에서 준비한 맛있는 점심식사 후 버스로 철원군 노동당사 앞 철원역사문화공원을 둘러보고 되돌아 나오는 귀경 버스 안에서 러프한 후기를 게재하였다. 위대한 나의 조국, 대한민국의 영원함을 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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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임순택(62)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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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택(62)
2025-02-11 13:16
2024년 11월 30일

사단법인 DMZ평화누리 길.만.사 대표 71회 김학면 동문이 리딩했던 DMZ평화의 길 제16코스(DMZ두루미철새평화타운 ~ 도창검문소)의 산길샘 앱 GPX 16㎞ 트랙을 Google Earth 3D 동영상으로 변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https://tv.kakao.com/channel/2963586/cliplink/45294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