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리스 오블리주 (64회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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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욱(전 동아시아지속가능발전연구원 원장, 64회)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s oblige)’는 1808년 프랑스 정치인 가스통 피에르마르크가 처음 사용한 말로 높은 사회적 신분에 걸맞는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우리 격언에 “양반은 양반답게 처신해야 한다”는 말과 잘 어울린다.
노블리스 오블리주하면 프랑스의 칼레의 시민을 연상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주최씨 가문’이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대명사처럼 인용되곤 한다.
‘경주 최부자’는 10대 300년간(1650~1950) 만석꾼의 부를 이어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가문이다. 최씨 부자 가훈은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교과서 같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하지 말라. 재산은 만석 이상 지니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 땅을 사지 말라.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은 무명옷을 입어라 그리고 사방 백리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이런 가훈을 실천하여 지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부를 오래 유지하였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가 식민지로 전락한 데는 교육의 부족도 문제가 되었음을 알고, 해방 직후 사립대학교 설립을 계획하여 영남대학교의 전신인 대구대학과 영남이공대학의 전신인 계림대학을 설립하는 데 전 재산을 희사하고 300년의 부를 마감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였다.이는 경주최씨부자를 연구한 전진문 교수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이다.
일제시대 전 재산을 팔아 국보급 문화재의 해외 유출을 막았던 간송 전형필 선생과 유한양행을 국민기업으로 키워 온 유일한 회장 등도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분들로 회자된다. 훗날 역사가들은 국가 발전과 사회공헌에 큰 기여를 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같은 기업인들도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표적 기업인들로 기억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나라를 세계적 반도체 강국으로 만들고 현재의 인천 국제공항 건설을 김영삼 정부에 제안하였으며 세계 초일류 서울시 발전 청사진을 제시한 이건희 회장과 1997년 11월 IMF금융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적 금 모으기기 운동과 수출 500억불 달성을 제안하고 선도했던 김우중 회장은 인재 양성과 장학사업 등 사회공헌활동 면에서도 지대한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몇몇 종교계 지도자와 기업인을 제외하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분들이 드물다. 특히 정치인들 가운데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분들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지식인들도 마찬 가지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지도자들이 국가와 국민을 섬길 줄 모른다. 삶의 현장을 모른다. 탁상공론만 한다. 이를 두고NATO 공화국이라고 한다. No Action Talk Only. 즉 말만 번지르게 하고 행동이 없다는 것이다. 한 기업인은 한국의 정치는 3류이고 기업은 2류라고 했다가 김영삼 정부 시절에 호된 시련을 겪은 적이 있다. 사농공상의 유교문화와 권력중심의 연고주의와 이권 카르텔이 견고하다.
진영논리의 틀에 갇혀 사실에 입각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가야 하는 길과 진영이 추구하는 길이 다르다. 올바른 정치인이 살아 남기 힘든 구조이다.
지도자는 자신의 지위와 권한에 걸맞는 책임을 스스로 정하고 실천해야 한다. 권한만 누리고 책임을 질 줄 모르는 지도자는 이제 설 자리가 없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이 노블리스 오블리주이고 국민에 대한 배려이다.
서양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상징인 프랑스 북부의 항구도시 칼레의 시민대표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실천이 국가적 지도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14세기 백년전쟁때 잉글랜드 군대에게 포위당한 칼레 시민들은 6명의 시민 대표가 목숨을 내놓는 용기와 희생정신에 의해 목숨을 구했다. 오늘날 인류는 전쟁과 환경 문제 등으로 생명과 평화를 위협받고 있다. 이같은 처지에 놓인 우리 인류는 누구나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으로 살아 가야 할 때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수필집 배려(이병욱)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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