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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홍(59회) 동문 조선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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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5 17:24 117 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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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회 남주홍.jpg


 

 

 남주홍(59회) 동문에 대한 기사가 금일 조선일보 9월5일자 A37 에 "조용헌 살롱"

연재 칼럼에 아래와 같이 실렸다.

 

<기사 내용>

 

남주홍 八子

 

남주홍(南株洪.64) 교수는 걸프전, 이라크전, 연평대전, 그리고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이 발사될 때마다 TV에 나와 해설을 해주는 안보전략 전문가이다. 위기가 발생해야만 존재감을 드러내는 병가(兵家)의 팔자다. 어쩌다가 '병가'의 팔자를 타고났는가? 그는 6.25때 부친이 전남 광양 진월면 파출소 간부를 지냈던 연유로, 망건(網巾) 모습의 망덕산(望德山)이 보이는 파출소 관사에서 태어났다. 그가 순천중 3학년일때 가세가 완전히 기울어 온 가족이 서울로 급히 이주해야만 했다. 하루종일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서울 우이시장의 참기름 집 2층 단칸 셋방에서 일곱 식구가 오글오글 살았다. 아버지는 그 옆에 임시로 천막을 치고 건어물을 팔았다. 돈이 없어서 덕수상고를 갔고, 졸업 후 조흥은행에서 근무하였다. 어느 날 중학교 동창들이 은행에 찾아왔다. '커피 값 좀 빌려줘라! 여대생들 하고 미팅하러 바로 옆 다방에 왔다'. 동창들은 서울대, 연고대 배지를 달고 있었다. 그날 저녁 집에 와서 자신의 처지가 서러워 엉엉 울었다. '나도 야간대학이라도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당시 낙원동에 있던 건국대 야간대학에 들어갔다. 그 무렵 근무하던 은행지점 길 건너편 덕수궁 쪽에는 영국문화원이 있었다. 점심을 후닥닥 먹고 문화원에 갔다. 영어 신문도 보고 원서도 읽으면서 영국으로 유학 가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상고, 야간대졸이 은행에 계속 있다가는 주변만 맴돌다가 인생 끝날 것만 같았다. 도전해서 드디어 유학시험에 합격했고, 퇴직금 300불 중에서 런던공항에 내리니까 주머니에는 200불만 남았다. 돈을 아끼기 위해 템스강 남쪽의 YMCA 회관 마룻바닥에서 며칠을 보냈다. 1977년 여름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펍 웨이터로 부터 시작해서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에든버러대 석사과정을 거쳐 마침내 명문 런던정경대학(LSE)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1981년에는 하버드의 헌팅턴 교수가 초청해서 그 밑에서 3년간 외교안보학을 공부했다. 이후로 안보전략가의 길을 걷게된다. 교수직과 외교,통일,정보 부서의 정무직을 두루 거쳤다. 찢어지게 가난했어도 팔자대로 갔다. 요즘 돌아가는 게하도 수상해서 병가(兵家)의 팔자를 더듬어 보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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